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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첨단제조패권 심화 속 미국 혁신전략 (산업통상자원부 월간 통상 12월호 특집호)
  • 작성자STEPI
  • 작성일시2023-09-11 13:18
  • 조회수287

https://tongsangnews.kr/webzine/1632302/sub6_2.html


첨단제조패권 심화 속 미국 혁신전략


오윤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사회연구단장




최근 글로벌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산업과 연계되고, 더 나아가 국가안보와의 연계가 강조되면서, 이른바 ‘첨단기술패권 경쟁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현실화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와 가속화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속에서 세계 각국은 첨단기술패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첨단기술패권 경쟁의 시대, 숨겨진 이면 “첨단제조패권 경쟁”


글로벌 강국인 미국 역시 이러한 경쟁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핵심품목인 반도체 등 첨단품목에 대한 기초연구부터 연구개발(R&D), 제조 인프라까지 총체적인 지원을 추진하는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이하 반도체법)’이 통과됐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등을 통해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에서의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과거부터 첨단기술 R&D 분야에서는 전 세계 기술을 선도하고, 기술패권에서 이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첨단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각종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8월, 반도체법 통과 후 나온 바이든 대통령의 성명을 살펴보면,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 위기감과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이 반도체를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공급의 10%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첨단 반도체의 경우 생산이 전무하다(America invented the semiconductor, but today produces about 10 percent of the world’s supply and none of the most advanced chips)”며, “전 세계 생산의 75%를 동아시아에 의존하는 상황(Instead, we rely on East Asia for 75 percent of global production.)”을 지적했다. 결국은 아무리 뛰어난 첨단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산업·경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조 경쟁력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치열해지고 있는 첨단기술패권 경쟁의 본질은 첨단제조패권 경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이어진 강력한 제조혁신 정책

지속 가능한 혁신과 성장 관점에서 제조업의 역할에 대해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이미 주목해 왔다. 2000년대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2009년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제조업의 부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본격 수립하고, 첨단제조 국가전략계획(National Strategic Plan for Advanced Manufacturing), 첨단제조기술 확보를 위한 ‘국가 제조업 혁신 네트워크(NNMI; National Network for Manufacturing Innovation)’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또한 1990년대부터 확산돼온 미국 기업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즉 생산비를 절감하고자 공장 등의 제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던 것을 본국으로 회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추진했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연방정부의 역할 축소와 맞물려, 미국의 민간 기업들이 비용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제조업의 기반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러한 기조는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 다시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국 기업의 미국 회귀는 물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려는 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의 글로벌공급망 등 통상문제와 결부한 제조업 강화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미국산 우선구매(Made in America)’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005) 등을 통해 해외 조달 비중을 제한하고 자국 조달 비중을 높여 제조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추진 중이며, IRA 등을 통해 미국 내에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설비 유치를 확대하려는 전략이 그것이다.




디지털 경제 시대, 첨단기술 초격차를 위한 공격적인 지원 확대

이에 더해, 디지털 경제 시대의 범용목적기술(GPT; General Purpose Technology)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AI), 양자기술(quantum technology)에 대한 R&D 투자도 확대 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범용목적기술이라고 하면 특정 분야나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기술혁신은 물론 사회 전반의 혁신을 유발해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기술을 의미한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이 보편화되는 미래에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의 다양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대용량 데이터의 빠른 연산처리를 지원하는 양자기술 등이 범용목적기술로 활용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이들 디지털 경제 시대의 범용목적기술 선도와 첨단기술 분야 초격차를 위해 강력한 지원정책을 추진 중이다. 먼저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지난 2020년 국가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법(National AI Initiative Act) 통과를 기반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실시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R&D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 및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해 글로벌을 선도하고자 추진하는 이 법의 운영을 위해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내에 별도의 사무국(NAIIO; 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Initiative Office)을 두고 인공지능 분야 기술 역량 확보는 물론, 인공지능 기술의 산업적 활용을 촉진하고자 개인정보보호, 권리 등 법·제도적 측면까지 포함하는 로드맵과 실행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양자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의 공격적인 행보는 이어지고 있다. 양자역학적 현상을 활용한 컴퓨팅 기술은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연산을 가능하게 해 실시간 연산이 필요한 자율주행차 등에서의 활용뿐만 아니라, 보안·기술에서도 핵심이기에 미래 혁신산업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바이든 행정부는 2019년 트럼프 행정부에서 출범한 양자연구집중지원법(National Quantum Initiative)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은 물론, 최근에는 반도체법의 일환으로 양자 연구 프로그램 등에 연간 약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발표하고, 양자연구집중지원 자문위원회(National Quantum Initiative Advisory Committee)를 강화하는 등 양자 분야에서의 주도권 확보에 역량을 결집 중이다.




첨단제조패권 경쟁 시대의 핵심전략, 스마트 제조

치열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구도와 함께 첨단기술패권, 첨단제조패권을 둘러싼 경쟁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 2위인 국가이자,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가 2006년 이래 5위권에 진입한 한국 역시 이러한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이 첨단제조패권 경쟁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산업혁신을 위해서는 첫째, 스마트 제조의 활용을 통한 제조경쟁력 강화 전략이 필요하다. 우수한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역량을 제조업에 접목해 첨단제조 역량을 고도화하는 스마트 제조는 우리에게 효율적인 전략일 것이다. 미래의 주요 제조공정을 자동화된 장비와 로봇이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여전한 주력산업인 제조업을 대규모 고용창출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완성하는 ‘혁신의 인큐베이터’ 역할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둘째,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유턴기업 지원)에 스마트 제조를 연계해 국내에 복귀하는 제조·생산시설의 고도화를 지원하는 ‘스마트 리쇼어링(smart reshoring)’(가칭) 정책의 도입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공장의 도입은 유연성 향상과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리쇼어링에 긍정적이라는 연구결과도 발표되는 가운데, 글로벌공급망의 불안정성·불확실성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리쇼어링 트렌드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낮은 편인 현 상황에서 법인세 감면, 고용창출 중심으로 논의됐던 기존 리쇼어링 이슈를 스마트 제조 경쟁력 확보 관점까지 확대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스마트 제조 전략의 본질은 ‘제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지나친 정보기술·소프트웨어 중심의 접근보다는 제조현장의 운영기술(OT) 역량을 강화하려는 전략이 중요할 것이다. 단순 스마트공장 보급·확산이나 중소·중견기업의 디지털 전환 지원 관점에서 벗어나 첨단제조의 역할과 관련 생태계 육성을 위한 정책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첨단제조패권 경쟁 시대의 중요한 대응전략일 것이다.